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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6. 7

내가 해외에 나가본 것은 3번이다. 순수한 여행 목적인 적은 없었고 모두 일종의 연수였다. 공장 견학이나 시찰. 그리고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 등이다. 이런 여행에서 하나의 단점이라면 답사 보고서를 쓰야 한다는 것이다. 여행후 답사 보고서를 제출하기 전까지는 가슴에 큰 덩어리를 얹고 살아가는 기분이다.

 

그런 가슴속 덩어리를 경험하는 내가 동창모임을 다녀와서 글을 쓰야 한다는 것이 하나의 당위처럼 느껴진다. 그건 준비한 친구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준비하는데 참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준비해준 잔치에 마냥 앉아 있다 오는게 영 마음이 편치가 않다. 그래서 모임이 끝나고 오는 중 내내 글로라도 감사의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전체 동문모임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 첫모임을 빼고 모두 참가했으니 타율이 0.75, 상당히 높은 편이다.

꽤 오랫동안 죽전만당 사이트를 들락거리지도 않았고(동문회 안내가 되어있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그냥 지내다가 상완이가 보내준 문자를 보고 어제 다시 들어와 보았다.

어느 순간부터 손님이 끊어지면서 참 쓸쓸한 모양새인 것 같다. (그중 나도 한몫 했지만)

게시판을 몇 번 클릭하니 2년 전, 그리고 4년 전에도 내가 쓴 동창회 참가 후기가 눈에 들어온다. 준비한 친구들에 대한 고마움을 담으려고 글을 쓰기 시작한 것 같은데 다시 읽어보니 그 때의 기억이 되살아나고 그 장면들이 선명하게 떠올려진다. 그래서 이번에도 또 써보기로 했다. 지금은 별것 아닌 글이지만 훗날에는 읽을 거리가 될 거라 생각하면서. 그리고 또 다른 친구들의 후기도 기대하면서. 글을 쓰면서는 늘 부끄러운 마음도 한자리를 차지하지만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까.

 

 

33회 전체 동창모임 네 번째가 열린 2011년 6월 4일 토요일!

근무하는 토요일이다. 출근하면서 같이 사는 남자에게 동창회는 혼자 다녀오는게 좋겠다고, 오후에 병원 예약도 있고 그간의 학교일로 지쳐서 주말에는 좀 쉬어얄 것 같다고 했다.

퇴근하고 오니 출발 준비도 않고 있다. 내게 병원 다녀와서 같이 가자고 한다.

혼자 가기 싫은 눈치다. 날더러 내려가는 차안에서 잠좀 자고 쉬란다. 내가 동창회 참가할려고 생각했으면 전날에 애들 먹거리도 챙겨놓고 세탁도 좀 하고 했을 것을... 아무 준비도 못했는데 종용하는 눈치를 무시할 수 없어 같이 가기로 맘먹어 버렸다.

부지런히 챙기고 서둘러 출발한다는 것이 벌써 5시다. 기차표 검색하니 KTX 모두 매진이다.

대구를 향해 집을 나서니 곧 길이 무지 막힌다. 속도계는 시속 5, 6, 7을 왔다갔다 한다. 오늘 내로 도착할 수 있을까? 도저히 불가능하다. 올림픽대로의 반포에서 운전대의 남자는 차를 돌린다. 집으로 가자고. 오늘내로 도착 못할 것 같다고.

머리와 몸이 무겁기만 했던 나는 한편 반갑기도 했지만 남편은 참가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할 거란 그의 마음을 내 맘대로 읽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중인 이 남자를 동창회에 보내려고 스마트폰으로 KTX 기차표 검색을 했다. 반환표라도 구해주려고.(내가 싫어하는 스마트폰이 이럴 때 유용하다니!)

어렵사리 표를 구해서 야간 기차를 탔다. 남편은 포기하겠다던 감정과 달리 마음은 벌써 대청마루에 가 있다.

9시 30분 동대구에 하차! 미리 도착한 판숙이, 영희, 화성이, 철형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밖에선 대청마루 사장님께서 우릴 기다리고 계신다. 동대구역에서 대청마루까지는 꽤 긴 거리다. 대청마루 간판이 눈에 들어오나 하는 순간 계곡의 물소리와 여름밤의 풀내음이 찐-하게 우릴 먼저 반긴다.

그리운 얼굴들은 모두 거나하게 취한 모습들. 막걸리를 담은 호리병을 들고 서 있으면 참 어울릴만한 분위기의 표정들이 많다.

반가움을 이기지 못해 서로 끌어안는 몸인사, 그리고 이어지는 눈인사, 손인사, 말인사!!!

내 눈과 몸과 마음을 어디에 먼저 두어야 할지 부지런히 헤매어야 했고 머리가 잠시 멍해진다. 새로운 얼굴들이 많다. 25년만에 첨 보는 얼굴도 많다. 이제는 완연한 아저씨가 되어버린 모습에서 애써 고딩의 풋풋함을 찾으려 한다면 세월에게 너무 큰 해를 끼치는 것일까?(윤창익이는 날더러 아줌마 같다고 몇 차례 펀치를 날리더구만) 김기수는 여전히 얼굴이 앳된 모습이더라.

평소에는 잊고 지내던 모습들이지만 이야기를 건네면서 아련한 과거 속에서의 시간들을 떠올린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

모두들 직장 생활, 생계를 위한 일들에서 벗어나 동창회가 작지만 하나의 활력이 되기를 내게도 친구들에게도 기대한다. 서울의 올림픽대로에서 남편이 집으로 돌아가자 했을 때 남편을 참석시키고자 했던 것은 관계의 윤활유가 흐르는 동창회에서 남편이 또 다른 에너지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크게 자리했다. 회사에서의 인간관계와는 또다른 생생한 감정속에서 활력을 경험하는 계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긴 시간을 달려서 도착해야 하는 자리에서, 어쩌면 어색함을 경험해야 할지도 모르는 자리에서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 나의 단순한 상상일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오늘 나는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대구 친구들 모두 고생 정말 많이 한 덕택에 많은 친구들이 모였던 것 같다. 상완이는 아내로부터 ‘ 동창회장 자리 내놓으면 집에 들어오고, 내놓지 않으면 집에 올 생각말라’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받았다면서도 연신 싱글벙글이다. 수차례 문자 보내면서 참여를 독려하고 또 우리에게는 천연염색의 멋진 스카프를 선물했다.

(상완아, 이 스카프 하고 내가 가을에 바람나면 니 어쩔래?) 병철이는 손님맞이에다 총무일을 하느라 장부를 내밀면서 바쁘게 움직인다. 술마시고 싶은 걸 참느라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동수와 종석이가 어느 친구든 인사 한 곳 빠뜨리지 않으려고 이곳 저곳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듬직하기만 하다.

박재현이가 돌린 원숭이가 씹어서 먹다 버린 커피로 만들었다는 커피맛 다시 보고 싶다. 그리고 빨-간, 노-란 파프리카의 단맛배인 풋풋함과 싱싱함이 그립다.(누가 보냈다고 했지? 너무 미안하지만 아래 댓글 좀 달아줘, 누가 보낸 파프리카인지)

 

늦게 도착한 탓에 긴 얘기를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여러 친구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밤이 깊어가면서 밤공기가 차가와진 탓에 술이 놓인 바깥 테이블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노래방에 들어가 열기를 더하면서 보냈다.

바깥에서는 남정네들이 모여앉아 긴긴 얘기를 하는데, 내가 있는 노래방엔 여인네와 남정네가 한껏 목청을 높이고 몸을 쉴새없이 움직인다. 광태는 노래방 비용 많이 들었겠더라. 프로중의 프로 일품이라는 느낌이 오더라. 효찬이는 세대차이 느낄만큼 신세대 노래를 많이 해서 분위기가 한층 젊어지게 하더구만. 임영한의 목소리는 감동 그 자체였는데 한곡밖에 듣지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 철형이가 부른 ‘바람과 구름’이란 노래는 지금도 그 가락이 떠오른다. 첨 듣는 노래였는데... 우리 모임의 에이스 인숙이는 역시 흥행의 마술사이다. 분위기를 띄우면서 즐겁게 노래하고 춤추고. 이런 저런 일이 많을 것임에도 빠지지 않고 참가하여 동창회를 가마솥같이 은근히 달구어주는 대자, 성순이도 열기를 더해주었다. 오랫만에 만난  정이가 흥이 그렇게 많은 친구인 줄 알고 감동했다. 나도 술 마셨으면 더 잘 놀 수 있었는데!

 

40중반의 나이에 밤을 새는 것은 어렵다. 밤이 깊어지면서 멍해지는 머리, 몸의 중심을 압박해오는 통증... 새벽 3시를 훌쩍 지난 시간이었지 아마? 침실로 향해서 겨우 눈을 붙였나 하는데 하는데 노래방 소리가 다시 크게 들려온다. 새벽 6시경이었나보다. 밤새 술과 벗하느라 가무를 즐기지 못한 굳센 남자들의 마지막 외침인지 그 소리가 무척 크게 귀를 울린다. 같이 자던 정이, 정인숙, 성순이, 현인숙, 판숙이, 대자, 영희 모두 잠에서 깨어 났다.

비몽사몽중인데 밖에서는 친구들이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는 소리가 들린다. 새벽에 출발하는 걸 보니 일정이 몹시 바쁜 모양이다.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 마음으로 인사하고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한다.

정이와 정인숙이는 갓바위 산행을 한다고 새벽에 나선다. 누구에게나 한가지의 소원은 들어준다던 갓바위를 오르겠다고 한다.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밖은 여전히 소란하다. 대강의 몸단장을 하고 고동(올갱이)가 간간이 눈에 뜨이는 아주 시원한 씨레기국으로 아침을 먹었다. 전날 저녁의 김치찌개도 잘 먹었는데 아침국은 깔끔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집행부에서 미리 준비한 스텐 그릇, 상완이가 만든 멋진 스카프, 32회 김영국 선배님이 찬조한 기념 타올을 나누어 준다. 나는 선물만으로 벌써 한가득이다.

거나하게 붉은 얼굴로 여전히 동창회의 절정에 있는 남편과 9시가 좀 지나 명식이가 운전하는 차에 올라 영희, 인숙이와 동행하여 대청마루를 나선다. 다음에 풀 아쉬움을 가득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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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완 2011.06.08 10:37

    김영진이가 파프리카 찬조.....

    몸은 못오고 마음과 파프리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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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자 2011.09.16 17:48

    정랑이 글을 읽고 있노라니 그날의 상황들이 영화필름처럼 돌아간다. 그날 준비한 친구들 너무 고생많았고. 학교때 모습보다 성숙(?)한 모습들을 보면서 꽤 괜챦은 동창들도 있었구나 생각했다. 자주 사는 얘기들 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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